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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뉴욕타임스 기고 전문

기사승인 2017.10.13  03: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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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

저작권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한국의 유명 소설가가 외국 언론에 기고한 글 전문을 번역해 공개한 곳이 하나도 없다.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로 쓴 글을 영어로 번역해서 미국의 주요 언론이 이를 게재했다. 솔직히 소설가 한강 씨 전화번호를 알면 전화를 해서 원문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저작권 문제가 있는지도 확인하고 싶고…

혹시나 하면서 주요 언론은 물론 뉴스 번역을 주로 해 소개하는 곳에서라도 나오겠지 하면서 기다렸는데 감감무소식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글의 내용 전부를 읽고 싶은 사람은 미국보다 한국에 훨씬 많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작권 문제는 나중 문제이고, 에라 모르겠다 싶어 무식하지만, 누군가 초벌 번역을 해준 참에 아예 조금 손을 봐서 공개한다.

번역 이상하면 아래 링크 들어가서 영어로 읽으면 된다. 한글로 된 걸 영어로 번역해 게재하고, 그걸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다는 게 좀 그런데, 더 웃기는 건 뉴욕타임스 해당 글에 가보니 친절하게도 중국어로는 간체 번체로 번역문을 제공하고 있다. 이게 뭔가 싶은 마음이라니… (편집자 주)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 승리로 끝나는 전쟁 시나리오는 없다.

한강 / 2017년 10월 7일


서울, 한국 - 나는 며칠 전에 보았던 뉴스에서 내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70대의 한 남성이 실수로 길에 두 개의 현금 뭉치를 떨어뜨렸다. 이를 발견한 두 사람이 주워서 나누어 가졌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절도죄로 기소됐다.

지금까지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남성이 그토록 많은 돈을 소지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경찰에게 "전쟁이 일어날 게 걱정되어 은행에 저축해 놓은 돈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손주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매달 조금씩 4년간 저축한 돈이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은 사춘기였던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을 것이다. 나는 평범한 중산층 삶을 살아온 그 남성이 저축한 돈을 찾으러 은행에 가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상상해 봤다. 테러, 불안, 무기력, 긴장.

그 남성과 달리 나는 한국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 속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북쪽 국경은 넘을 수 없었고 지금까지도 북한 사람들과 만나거나 접촉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전후 세대에게 북한으로 알려진 나라는 초현실적인 존재 비슷했다. 물론 이성적으로 나와 다른 남한 사람들은 평양이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밖에 걸리지 않음을 알고, 전쟁이 끝나지 않아 휴전 상태인 것도 알고 있다. 나는 그것이 망상이나 신기루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도와 뉴스를 통해서일 뿐이다.

언제인가 한 번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동료 작가가 비무장 지대는 마치 바다처럼 느껴진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곳이 반도가 아니라 섬인 것처럼. 이런 독특한 상황이 60년 동안 지속하면서 한국인들은 모순적인 무관심으로 긴박함과 긴장감에 대하여 마지 못해 익숙해졌다.

오늘날,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신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 나머지 국가들이 공포 속에 북한을 감시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평온해 보인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미국이 북한에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와도, 학교, 병원, 서점, 꽃가게, 극장, 카페들은 모두 평상시처럼 문을 열고, 어린아이들은 노란색 스쿨버스에 올라타 창밖으로 부모에게 손을 흔들고, 학생들은 머리카락이 아직 젖은 채로 교복 차림에 버스를 타고, 연인들은 꽃과 케이크를 들고 카페로 향한다.

그럼 이렇게 보이는 모습들이 진정으로 한국인들이 실제로 무관심하다는 증명인가? 모두가 정말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오히려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긴장과 공포는 우리 내면에 깊숙이 파고들었고, 이는 평범한 대화 속에서 짧게나마 드러나곤 한다. 특히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는 이 긴장감이 점차 증가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뉴스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긴장하면서 집과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공습 대피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추석 명절을 앞둔 시기에 가족을 위한 선물을 고르면서 어떤 사람들은 보통 때처럼 과일 상자 등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손전등, 라디오, 약품, 비스킷으로 채워진 "생존 배낭"을 준비하기도 하고, 기차역과 공항에서는 전쟁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 긴장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걱정한다. 국경을 맞댄 북한에서의 핵무기 실험과 방사선 누출의 가능성에 두려워한다. 우리는 말의 전쟁이 결국 현실이 될까 두려워한다. 보고 싶은 날들이 있으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 옆에 있으므로, 한반도의 남쪽에 5천만 명이 살고 그중에 70만 명이 유치원생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한국인들은 북한의 존재에 대해 세계 어디보다 더 구체적으로 느끼지만, 조심스럽게 침착함과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독재자와 그 밑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별하기 때문에 우리는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어 전체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구를 위해 전쟁이 벌어지는가? 이런 오랜 의문은 생생한 현실로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1980년 광주 항쟁을 다른 나의 소설 "소년이 온다 (원제: Human Acts)"를 쓰는 동안 군부 독재 정권의 계엄령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억제하고자 군대를 동원했을 때를 조사하면서 나는 광주뿐만 아니라 광주와 관련한 문서는 물론, 제2차 세계 대전, 스페인 전쟁, 보스니아와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했었다. 내가 궁극적으로 집중하고자 했던 것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 세계 역사에 드러난 보편적인 인류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 다른 사람에 대해 그토록 잔인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고, 폭력에 직면하면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야만과 존엄성 사이의 벌어진 틈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모색하고 싶었다. 조사하는 동안 깨달은 많은 것 중 하나는 모든 전쟁과 학살에서 인간은 국적, 인종, 종교, 이념으로 다른 사람들을 "하위 인간"으로 인식하는 중대한 시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대하면서 나는 동시에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최후의 방어선은 다른 이의 고통에 대하여 완전하고 진실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 고통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 비로소 모든 편견을 이겨낼 수 있으며, 타인의 고통에 대한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실제적인 의지와 행동이 매 순간 우리에게 요구된다는 것이다.

한국 전쟁은 이웃 강대국들의 대치로 발생한 대리전쟁이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 3년 동안 잔혹하게 죽었고, 전 국토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비극적인 과정에서 우리 동맹국인 미국의 군인들이 남한 주민을 학살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노근리 학살 사건은 미군들이 수백 명의 시민, 주로 여성과 어린이들을 돌다리 아래로 몰아넣은 다음 며칠에 걸쳐 쏘아 죽였다. 왜 이런 식으로 해야 했을까? 만약 그들이 남한 피난민들을 "하위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완전하고 진실하게 인식했다면, 존엄한 인간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제 거의 7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미국으로부터의 뉴스에서 나오는 위험한 말들을 익숙할 정도로 매일, 열심히 듣고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전쟁이 한반도에서 터지면 매일 2만 명의 한국인이 죽을 것"이라면서 말한다. "미국에서 전쟁이 나는 게 아니라 한반도에서 나는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라."

이런 대립 상황에서 대화와 평화의 해결책을 말하는 남한 정부를 향해 미국 대통령은 "그들은 오직 한 가지만을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논평이다. 한국인들은 정말 한 가지만 이해한다. 평화가 아닌 해결책은 의미가 없으며, "승리"는 그냥 터무니없고 불가능한 구호일 뿐이라고 이해한다. 대리전쟁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금 이곳, 한반도에 살고 있다.

앞으로의 몇 달을 생각하면서 지난겨울의 촛불을 기억한다. 매주 토요일, 한국 전역의 도시에서 수십만 시민이 모여 부패한 정부에 맞서 항의하며 종이컵에 들은 양초를 들고 대통령이 물러날 것을 외쳤다. 나도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다. 우리는 그것을 "촛불 집회" 또는 "촛불 시위"라고 불렀는데 우리는 이제 그것을 "촛불 혁명"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촛불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현실로 만들어냈던 사람들, 아니, 존엄성을 지닌 수천만의 사람들은 단지 세상에 태어나고 삶을 유지하고자, 약하지만 매 순간 새롭게 떠오르는 미래를 위해, 한 번에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 카페와 찻집, 병원과 학교의 문을 계속 연다. 누가 평화 이외의 다른 시나리오를 그들에게 말할 것인가?

뉴욕타임스 화면 캡쳐


https://www.nytimes.com/2017/10/07/opinion/sunday/south-korea-trump-war.html

 

프레스바이플 webmaster@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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