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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지옥, 헬조선

기사승인 2015.11.13  15: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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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미래를 얼마나 예측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이미지화할 수 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상상'의 측면에서 발휘되는 인간의 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상상’(imagination)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들이 제시되겠지만 나는 그것을 경험과 사유, 감성과 지성의 앙상블로서의 인간이 이 모든 것을 활용하여 그려낸 고유한 예상도, 곧 미래상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용광로와 같은 감성(emotion)이 개입되었으니 현실적 판단과 멀어졌을 것이며, 거기에 자유로운 사유(thought)가 보태졌으니 막장으로 치달을 수 있겠다. 하지만, 현실적 경험(experience)을 바탕으로 그렸으니 완전히 근거 없는 허상이나 망상만은 아닐 게고, 지성(intelligence)에 의해 다듬어졌으니 만인의 설득력을 얻을 정도로 정교한 모형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나아가 치열한 경험과 가치관에 의해 구상되었으니 고유한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어떤 상상은 고요한 현존재의 생활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지만,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후자는 이른바 ‘생산적 상상력’에 해당한다. 이것은 지성적 인식에 대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런 상상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모습을 그려내어 창조와 혁신으로 이어진다. 다른 것들은 새로운 부호체계로 현실의 오류를 풍자적 방식으로 드러내 주기도 한다. 이 경우 거기에는 권선징악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앞에서 말한 상상의 생산적 기능과 달리 이것은 상상의 ‘도덕적’ 기능이다.

상상의 도덕적 기능을 가장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내세관, 곧 죽음 저편의 세상에 관한 생각이다. 통상 죽음 저편은 천국과 지옥으로 상상된다. 천국(paradise)은 착하거나 정의로운 자들이 지복을 누리는 공간인 반면 지옥(hell)은 악하거나 불의한 자들이 참혹한 고통 속에서 영생하는 공간이다.

내세는 종교의 영역이며, 천국과 지옥에 관한 한 기독교의 상상이 비교적 우리에게 익숙하다. 종교학대사전에 따르면 지옥은 '상실의 형벌'이라는 정신적인 것과, '감각의 형벌'이라는 물리적인 형벌을 부과한다. 지옥의 저주받은 자들은 지복(至福)과 신 안에서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그 결과, 극도의 공허가 그들을 엄습하며, 공허감은 헤아릴 수 없는 고민을 불러일으키며 자신의 처지의 비참함이 점차로 처절하게 느껴진다. 이런 상실의 형벌보다 더 큰 위협을 주는 형벌은 감각의 형벌이다. 감각의 형벌은 들끓는 구더기와 살과 뼈를 녹이는 뜨거운 유황불의 못에서 내려진다.

불교가 상상하는 지옥은 더 구체적이다(위키피디아). 지옥은 팔열팔한지옥(八熱八寒地獄)으로 구분된다. 여기서도 대부분의 지옥들에서 사용되는 형벌의 재료는 뜨거운 불이다. 예컨대, 대초열지옥(大焦熱地獄)은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음주, 사견으로 남을 속인 자, 착한 사람을 더럽힌 자들이 떨어지는 지옥이다. 이 지옥의 가운데에는 맹렬히 타오르는 불구덩이가 있고, 그 양쪽에는 뜨거운 용암이 흐르는 커다란 화산이 있다. 옥졸이 죄인을 쇠꼬챙이에 꿰어 사나운 불구덩이 속으로 처넣으면 죄인의 몸이 익어 터진다. 거기에 용암이 흘러들어 온몸이 불타서 재가 되어 없어질 정도로 고통이 극심하나 그 죄가 다 소멸하기까지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

등활지옥(等活地獄)에는 살생한 자들이 떨어진다. 똥오줌에 빠진 자는 냄새 때문에 괴로워하며, 그 속에 우글거리는 벌레가 온몸을 파먹는다. 또한, 이 지옥에서 중생들은 서로 할퀴고 찢는다. 옥졸들도 쇠몽둥이를 가지고 죄인을 때려 부수고 칼로 살을 찢는 형벌을 내린다. 또한, 칼날로 이루어진 무성한 숲을 지나는 동안 온몸의 살점이 파헤쳐지고 베어진다.

죄인이 죽게 되면 금방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죄인을 살려내어 같은 형벌을 거듭 받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옥졸들이 쇠갈퀴로 땅을 두드리거나 공중에서 살아나라 외친다. 죽었던 죄인이 다시 살아나게 되어 형벌을 거듭 받게 된다.

사이코패스를 제외한 대다수 정상적인 장삼이사들이 상상하는 지옥은 이런 곳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고통받아야 할 자들은 악인들이다. 이 나쁜 놈, 지옥에나 떨어져 죽어라! 지옥에 대한 이런 상상은 이 세상에서 뻔뻔스럽게 ‘영생’하는 악인들에 대한 증오와 징벌에 대한 열망의 결과다.

이제 우리 조선반도로 눈을 돌려보자. 이곳은 아빠가 어린아이와 노는 시간이 하루 6분밖에 안 되는 가정파괴 국가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 회원국 중 꼴찌인 불행한 국가다. 송아지 34마리를 팔아 대학 졸업했지만, 대부분이 백수며, 3억5천만 원 투자해 자식 하나 키웠더니 쪽박 차는 망할 나라다. 평균소득을 얻어도 평생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는 절망적 나라다.

노동자의 60%가 불안정, 저임금, 자존감 잃은 비정규직으로 저주받은 땅이다. 470만 명의 노동자가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비인간적 나라다. 한국 남성들은 정년을 다 채운 뒤에도 노구를 끌고 최소 11.1년은 돈 벌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고역의 땅이다.

삶의 만족도는 OECD 34국 27위인 불만의 땅이다. 청년 10명 중 7명이 ‘한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는 포기의 나라다. 푸른색의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 집, 인간관계, 꿈, 희망, 취업을 모두 포기하는 절망의 나라다. 하루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공화국이다. 죽지만 삶은 줄어든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최고인 반면 출산율은 최저다.

높은 양반과 그 자제들은 모조리 병신들이라서 그런지 병역이 면제되는 기막힌 나라다. 금수저 물고 난 행운아는 갑질하고 흙수저 물고 난 불운아는 평생 한탄하며 죽어지내야 하는 어둠의 나라다.

애들이 3백 명이나 수장되어도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뒤집어씌우는 억장이 무너지는 비상식의 나라다. 혼자 잘 살자고 민족을 배반한 자의 자식들이 대통령되고 당대표까지 되는 뒤집어진 나라다. 북한 같은 깡패국가를 빼고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국정역사교과서를 버젓이 쓰는 시대착오적 미개국가다. 상식이 도무지 숨 쉴 수 없다. 이게 지옥 아닌가? 조선은 지옥이다.

지난 주말 분노할 경험을 했다. 30대 중반인 조카가 현장에서 일하다 산재를 당했다고 연락이 왔다. 크게 다쳤다. 허리는 물론 얼굴이 엉망이다. 눈물이 나온다. 봉합수술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지만, 완쾌되자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 사이 여정을 들어보니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 대학을 졸업한 멀쩡한 청년이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으니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성품이 워낙 바른 친구라 첫 직장에서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단다. 다른 직원들은 아프다는 핑계로 결근을 자주 하지만, 조카는 결근 없이 성실히 일했다. 하지만, 사장은 그 성실함과 온순함을 악용하더란다. ‘성실한’ 자신에게 나태한 자들의 몫을 다 떠넘기더라는 것이다. 도저히 못 견뎌 다른 직장으로 옮겼다. 마트의 대리사장이었다. 매출이 조금만 내려가도 하루 종일 전화로 욕질이란다. 이 친구가 동생들에게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지옥’이라고 말하던 이유를 알겠다.

욕을 견디다 못해 할 수 없이 생산현장으로 취업했단다. 그런데 업체에서 안전장치 없이 엉성하게 발판을 설치한 바람에 그것이 무너져 7미터 높이에서 추락해 버렸단다. 그런데 회사란 놈들은 이 상처투성이가 얼른 퇴원하기를 바라며 권유하면서 서류를 작성 중이란다. 젊고 순진한 친구니 뭘 모른다. 모두가 속이고 떼먹고 도망치려 한다. 악귀들만 우글거리며 싸우고 찢는 지옥의 축소판이다.

이래저래 조선은 지옥이다. 헬조선!

그런데 조선의 지옥은 참 이상하다. 통상 지옥에서 불로 달궈진 쇠꼬챙이로 벌을 받아야 할 자들은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음주, 사견으로 남을 속인 자, 착한 사람을 더럽힌 자들이다. 그런데 이 악마들은 지복을 누리는 대신, 내 조카와 같은 착하고 성실한 자들이 벌을 받고 있다. 아무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이상한 지옥이다.

* 산재전문가, 노무사, 변호사의 도움이 있어야 제대로 보상을 받을 텐데, 걱정이다. 산재에 관해 조언을 기대하면서 한 지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통 답이 없다. 손만 벌리는 찌질한 진보는 이처럼 무시당한다. 조카야, 우리 이를 악물고 완쾌해 성공하자!

한성안(영산대 교수)
http://m.blog.naver.com/saintcomf/220537336086

 

한성안 영산대교수 saintcom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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