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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확정고시는 역사에 대한 '유신 선포'

기사승인 2015.11.03  14: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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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당시 박정희는 비상계엄령 선포문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세력균형 관계에 큰 변화가 있어서 한국의 안보에 위험스러운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된다"며 비상계엄이 국가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 박정희 정권은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만든 유신헌법을 공포했다.

박정희 정권은 5.16쿠데타처럼 기습적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데 이어 그로부터 불과 2개월 만에 유신헌법까지 공포해 버렸다. 그들이 민주주의의 숨통을 끊으며 내세웠던 명분은 국가안보였다. 그러나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기 불과 3개월 전에 '자주, 평화, 민족 단결'의 3원칙에 입각한 7.4남북공동성명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명분은 어딘가 앞뒤 말이 맞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장 통일이라도 될 것처럼 남북화해와 상호협력을 내세웠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 역사적 선언문이 3개월 만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남북대치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이는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 의문은 그로부터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풀리게 된다.

유신헌법이 공포된 지 40년이 흐른 지난 2012년 10월 17일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외교문서 중의 일부가 세상에 공개됐다. 이 문서에는 1972년 10월 17일 선포된 비상계엄령과 12월 27일 공포된 유신헌법과 관련된 기밀이 담겨 있었다.

1972년 10월 31일 주한미국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문건(2급)에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10월 12일 박성철 북한 부수상을 만나 "남북대화를 지속적이고 성공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정치시스템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우리정부는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문건에는 '남북조절위원회 남쪽 실무대표인 정홍진이 계엄선포 하루 전인 10월 16일 북쪽 실무대표인 김덕현을 판문점에서 만나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통보했다'고 적혀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박정희 정권이 비상계엄과 유신체제에 대해 북한에게 미리 귀띔을 해주었다는 의미다.

지난 2009년 공개된 동독과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북한 관련 외교문서에도 박정희 정권이 북한에게 비상계엄과 유신체제의 내용을 사전에 통보한 것이 드러난다. 문서에는 이후락이 10월 16일 남북조절위원회 북측대표인 김영주에게 "박 대통령은 17일 북한이 주의해서 들어야 할 중요한 선언을 발표할 것"이라는 내용과 10월 18일 "헌법수정을 통한 대화의 법적 근거를 만들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주적인 북한의 위협과 안보불안을 내세워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유신헌법을 공포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관련 사실을 북한과 사전에 공유하면서 남한의 시국상황에 대한 암묵적인 동조를 구했던 셈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것은 박정희의 유신헌법과 김일성의 사회주의 헌법이 같은 해 같은 날인 1972년 12월 27일 동시에 공포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놀라운 결과는 남과 북의 두 독재자가 이것까지도 사전에 합의했을 것이라는 추론마저 가능하게 한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유신헌법이 공포되는 과정에 이루어진 박정희 정권과 북한과의 비밀 접촉은 "유신 없이는 아마도 공산당의 밥이 됐을지도 모른다"며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정당화했고, "유신은 아버지가 노심초사 끝에 한 결정"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이 사실관계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한미국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문서와 동유럽 국가들의 북한 관련 비밀문건들이야말로 이를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다.

필자가 새삼스럽게 박정희 유신독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꺼내 든 이유는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과정이 마치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유신헌법 공포 과정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몇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정부는 당초 5일로 예정되어 있던 확정고시 발표를 이틀 앞당겨 오늘 오전 11시에 강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자 국정화 국면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절차를 무시한 것이다. 비상계엄령 선포도 그랬다. 어느날 갑자기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됐다. 정부는 국정화에 반대하는 국민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불구하고 국정화 강행에만 매달리고 있다. 민의를 무시한 권력의 독단과 독선만 보일 뿐이다. 독재자의 일방적 판단에 의한 강압과 강요만 난무했던 그 당시와 매우 흡사하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이 위선과 기만으로 점철돼 있다는 것도 똑같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의 비웃음과 조롱을 받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보편적 이성은 언제나 권력이 역사문제에 개입하는 것 자체를 단호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 역시 보편적 이성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었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또한 같은 맥락이다.

집권세력의 전략과 전술 또한 대동소이하다. 정부와 새누리당의 출구전략은 현행 교과서에 대해 이념과 색깔론을 덧씌우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해 김일성과 주체사상 문제를 부각시키고, 현행 교과서의 좌편향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있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망언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 역시 박정희 유신독재가 이루어지는 과정과 유사하다. 북한의 안보위협 때문에 유신을 할 수밖에 없다던 박정희 정권은 사실 유신체제의 과정과 내용을 북한에 통보하며 동조를 구하던 사이였다. 말하자면 그 둘은 서로 적대적 공생관계였던 셈이다.

북한이라는 상수를 두고 벌어지는 이 장면은 우리에게 아주 낯익은 풍경이다. 두 집단 사이의 밀월은 박정희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총풍사건이야말로 이 두 집단 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데에 있어 아주 유효한 표본이다.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는 두 집단은 서로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능통하다. 빨갱이, 좌익, 용공분자들이 생겨날 때마다 박정희 정권이 더욱 견고해져 갔던 것처럼, 현 집권세력은 종북주의, 좌파 등의 이념문제를 부각시켜 위기상황을 타개해 나가고는 했다. 국정화 정국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 반대가 극심해지자 등장한 것은 어김없이 북한이라는 상수였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과정과 박근혜 정부가 강행하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과정은 이처럼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닮아있다. 민주적 절차와 과정이 생략되고, 국민의 뜻이 철저히 무시되며, 오로지 권력자의 판단만을 '절대선'이라 강요하고 강제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딸의 집권기간 동안에 벌어지고 있는 이 기괴한 풍경은 궁극적으로 이 나라의 퇴보와 퇴행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십년 전 박정희는 영구집권의 야욕에 사로잡혀 민주주의의 심장을 도려내는 유신헌법을 선포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2015년, 그의 딸은 대다수의 역사학자들과 교사,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천명했다. 이는 우리민족의 유구한 역사에 유신을 선포하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더니, 그의 딸은 역사를 뜯어고치겠다 한다. 훗날 역사는 과연 두 부녀를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 부끄럽고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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